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지널드 존스턴 (문단 편집) == 선통제와의 관계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선통제존스턴.jpg|width=100%]]}}}|| || {{{-1 ''' [[선통제|{{{#fff 선통제}}}]]와 함께찍은 사진'''}}} || 그는 군주제를 지지했다. 저서《[[자금성]]의 황혼》에 따르면 존스턴은 [[광서제]]의 [[무술변법]]이 성공했으면 중국에도 [[입헌군주제|입헌군주국]]이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[* 반대급부로 [[서태후]]는 무지하게 까인다.], 1912년 선통제의 퇴위 이후에도 민심에 따르면 [[제정복고]]가 가능 했거나 청나라가 [[만주]]로 후퇴하여 북 - [[청나라]], 남 - [[중화민국]]이 양립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. 그리고 [[선통제]]가 1924년 [[톈진]]으로 망명했을 때에는 이를 긍정적으로 기술했고 [[만주국]] 역시 청나라의 연장선 그리고 [[제정복고]]의 성공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. 물론 존스턴은 1938년 사망하여 [[중일전쟁]]과 [[제2차 세계 대전]]을 제대로 겪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. 존스턴은 [[선통제]]에 대해 매우 친밀한 감정을 갖고 있었으며, 소년이었던 선통제가 [[자금성]] 안의 [[청나라 소조정]]에서 지내는 것이 건강과 발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걱정하여 [[중화민국]]과 맺었던 [[청나라 소조정#s-2|황실 우대 조건]]에 나온 대로 [[이화원]]의 별궁으로 옮기자는 주장을 끊임없이 했다. 이를 추진하면서 청실 소조정의 내무부가 관리하던 이화원을 1923년부터 존스턴이 황실감독관[* 판사대신, [[만주어]]로는 암반]이 되어 관리하게 되었다. 이 때에 존스턴은 [[광서제]]가 감금되었던 옥란당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